뿌리 깊은 자신감은 흔들리지 않는다. 2013 경남지방직 일반행정 최종합격

이현지

1. 시작하기에 앞서

긴 수험기간 동안 가장 해 보고 싶었던 일이 "합격수기 쓰기"였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합격수기를 써 보라는 제의를 받고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선뜻 정리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통 합격수기는 1년 정도 단기간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신 분들이 공부방법과 생활방법을 제시하는 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톱워치로 12시간 이상 공부한 적도 없고, 기본서 10회독 이상이나 단권화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점수는 더도 덜도 아닌 딱 컷으로 합격했습니다. 게다가 수험기간도 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기간으로, 20대의 절반을 공무원시험에 바친, 효율이나 모범과는 거리가 아주 먼 수험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가 합격수기를 쓰겠다고 결심을 굳힌 이유는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지도 모르는 '나같은' 수험생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긴 수험기간에 지쳤거나, 학교생활과 병행하고 있거나, 성적이 마음만큼 잘 오르지 않는 누군가에게,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제가 겪고 느낀 것들을 위주로 써 보기로 합니다.

공부방법, 교재, 생활 등 이러한 정보는 여기서 아마 얻기 힘들 것입니다. 저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신 다른 분들의 수기에서 이러한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동기부여나 슬럼프 탈출 등 심리적인 측면으로 수기를 채워 나갈 것입니다.

Ⅱ. 들어가기

1. 나는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가?

저 같은 경우에는, 아버지 및 몇몇 친척분들이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신데다가 학과 특성상 자연스럽게 공무원이 내 운명이라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업으로 인한 일만큼이나 저 자신을 위한 여가나 자아발전 등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국가나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면서도 자신을 위한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질서와 원칙을 중시하고 정해진 대로 일처리 하는 것을 편하게 여기며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도 한 몫 했습니다 ^^;

공부 시작 전에 자신이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고, 확실한 동기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확실한 동기가 없으면 유혹에 많이 휩쓸리게 됩니다. 대표적인 유혹이 '취업'의 유혹이겠죠. 인터넷, 휴대폰, 이성의 유혹보다 더 무서운 것이 '포기'의 유혹과 '취업'의 유혹입니다.
저는 수험 초반에 꼭 합격하겠다는 결심을 이루어 내기 위하여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 흔한 '스펙쌓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조차도요.
대학 2학년에서 4학년까지를 시험 준비와 학교생활을 병행해서, 어차피 못 할 것들이었지만, 만일에 그런 것들을 해 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면 저도 분명 취업의 유혹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 공무원이 되기로 확고하게 마음을 굳히셨다면 취업에조차도 눈길이나 관심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가?

2013년 공무원시험부터 고교선택과목이 도입되었습니다.
여러 말들이 많지만 이 제도가 가져다 준 메리트 하나를 꼽자면 '직렬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행정직군 모든 직렬에 선택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사회 · 행정학개론을 선택하면 원서접수 시 선택 가능한 직렬은 일반행정 뿐만 아니라 세무 · 출입국관리직 · 교육행정직 · 검찰사무직 등이 있습니다.
수험생들에게 직렬 선택에 있어 가장 보편적인 기준은 아마 '선발인원'이겠죠.

그렇지만, 여기서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합격을 원해서 무작정 많이 뽑는 직렬에 합격하긴 했는데, 들어가서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근무환경이나 업무에 회의감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발인원을 보고 무작정 직렬을 선택하기 보다는 해당 직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안전행정부, 국세청, 검찰청, 교육지원청, 각 시 · 도 홈페이지 등 각 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신에 대한 파악을 하자! - 나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사람인가?

자신의 성격, 성향, 습성을 파악하는 것도 공무원 수험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이것들을 파악해야 자신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와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 야행성인지, 아침형 인간인지 등을 파악하여야 합니다.
그에 따라서 인강을 들을지, 학원에서 실강을 들을지, 집이나 독서실에서 개인 공간을 가지고 공부를 할지, 학원 내 오픈 자습실이나 공립도서관 등 탁 트인 공간에서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체력이 강해서 일주일 내내 책상에 앉아있어도 끄덕없는지,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쯤은 쉬어줘야 하는지도 파악해야합니다.
체력적으로 뭔가 보충을 원하신다면 홍삼을 드시거나 버스 정류장 3~4정거장 앞에서 내려서 나머지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아침에 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합성동 버스정류소에서 내려야하는데 저는 경남은행 본점 정류소에서 내려서 나머지 거리를 걸어갔습니다. 체력보충도 되고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어서 저에게는 공부하는 시간만큼이나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4. 몇 년 만에 합격하기를 원하는가?

시쳇말로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같은 질문이라는 것 압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한다면 '1년', '2년' 등 구체적인 기간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막연하게 '최대한 빨리, 당장 내년 있을 시험!'이라고 답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수험기간은 최대한 짧으면 짧을수록 좋습니다. 빨리 합격한 후 남은 인생을 그만큼 충실하게, 또 재미있게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세상 일 뜻대로 안됩니다. 예정했던 수험기간을 초과하는 사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정말 독한 분들은 그렇게 되면 미련없이 포기하시던데, 저는 그 정도로는 독하지 못해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공무원 이외의 다른 길을 갈 여지를 일절 만들어 두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4년차 수험생일 때, 별로 크지 않은 점수 차이로 지방직에 낙방하였을 때는 알 수 없는 오기까지 생겼습니다.
오랜 수험기간이면 포기할 법도 한데, 오히려 더 달려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대로 물러서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험을 쳐서 그런지 매년 점수는 근소하게 올라도 합격권에는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도 남았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시험에 단기간에 합격한 분도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까 말했듯이 그만큼 독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는 졸업 전에 합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저의 무능력함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2013년 2월 졸업 후 집중적으로 수험생활에만 임하여서 올해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5.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 - 작은 노력도 소홀하지 말자

학교생활과 수험생활을 병행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학교시험, 리포트 등의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유혹'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워낙 좋아하였으나, 개강 총회나 MT, 학술제 등 학과 행사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4학년 2학기 동안 졸업준비를 핑계로 공부를 잠시 놓았을 때 막판에 몇 번 참여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학교생활이 수험준비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공부를 거의 손에서 놓다시피 한 마지막 학기에도 하루에 영어 단어집 한 페이지라도 보려고 했고, 영어 기본서에 문장 하나라도 읽어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부전공으로 행정학을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험 행정학과 학문으로서의 행정학은 초점이 다른 게 더 많지만, 저에게는 그 시간들이, 그동안 공부했던 것에 대한 '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본질은 비슷하니까요. 수업을 듣다 보면, 수험생활을 먼저 시작한 덕에, 익숙하거나 아는 내용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을 중점적으로 기억하려 노력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떠한 이유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공부를 완전히 손에서 놓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영어단어 한 페이지라도, 행정법, 행정학 한 장이라도, 제목 정도만이라도 눈에 담아두셨으면 합니다. 만일 공부를 완전히 놓았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하면,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졸업 직전 학기동안 위와 같은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대학생활이 끝나고 1월달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 좀 더 수월하게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하곤 합니다.

6. 모의고사에 일희일비하지말자!

보통 합격생들은 모의고사 성적도 우수하더군요. 수업 중 실시간 모의고사에는 심심찮게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장학생 모의고사 성적 우수자 명단에도 이름이 심심찮게 게시되고 ... 이번에도 그렇게 우수하셨던 분들 합격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모의고사 상위권보다 하위권이 더 익숙한 수험생이었습니다. 수업 중 과목별로 치는 실시간 모의고사도, 학원 내 전범위 모의고사도 전국모의고사도 저는 늘 하위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랬던 저도 합격했습니다.

누군가는 모의고사 성적이 시원찮아서 스트레스가 심할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랬습니다. 점수가 시원찮은 날이면 혼자 울기도 하고 (^^;;) 그냥 공부 안하고 태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남에게 우수한 모의고사 성적을 보여줌으로써 칭찬과 부러움의 시선을 얻기 위해 공부를 한 건지, 아니면 진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공부를 한 건지...

올해는 모의고사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버릇을 버리려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물론 모의고사 성적이 좋으면 동기부여도 되고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의고사 성적이 좋다고 하여 그것이 합격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합격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저처럼 '만년 하위권'도 합격하였잖아요 ^^

진정으로 무엇을 위하여 공부를 하여야 하는 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과정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무원 합격증이지 우수한 모의고사 성적표는 아닙니다. 단, 모의고사를 통하여 자신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보완을 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Ⅲ. 나가며


사실 저의 목표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합격하여, 당당히 졸업한 후 '무직자'가 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졸업 후에도 8개월이란 시간이 더 필요하였지만 그 시간만큼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온전히 저 자신만을 위해 투자하고 진정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에만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간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후회는 없습니다. 이제 저는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생활할 때, 실패에도 지치거나 굴하지 않고, 더 열심히, 겸손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분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여기다가 다 적자면 합격수기 본문 분량을 넘어설 것 같습니다. 글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항상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의 복잡하고 부족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도 다음에 있을 시험에서는 합격의 영광이 깃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