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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의 자괴감을 나타내는 단어 '헬조선', 역사나 이데올로기 아닌 생존의 문제로 봐야
고등학생 시절, 기자가 가장 가고 싶었던 학과는 한국사학과였다. 대학 입학원서를 쓰기 직전까지도 부모님께 한국사학과를 가고 싶다고 졸라댔지만 “굶어죽기 딱 좋다”는 슬픈 조언을 조금 받아들여 택한 것이 국어국문학이었다(하지만 국어국문학도 먹고살기 힘든 학문으로 꼽힌다).
대학을 가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부하고 싶은 학문마저 현실을 봐가며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던 순간이었다. 그 후로도 기자는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간절히 원했던 무언가를 반강제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을 꾸준히 맞닥뜨려야했다.
청춘의 달콤함을 알게 해 준 남자친구를 어쩔 수 없이 군대로 떠나보내야 했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었지만 취업을 생각해야 했으며 좋은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 얼마간의 준비를 더 하고 싶었음에도 나이를 생각해야 했다.
어쩌면 기자의 20대는 입시라는 이름의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친 뒤 얼떨결에 사회로 밀려나와 서서히 자신의 무기력함을 알아가는 출소자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지인들은 성토한다. “그렇게 참고 포기해왔더니만, 결국 보상받은 게 뭐가 있냐”라고. 공부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가고 대학 가야 잘 살 수 있다더니 남은 건 학자금 대출뿐이라는 자괴감 섞인 한탄은 술자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거리가 됐다.
절망적인 사실은 이후의 세대들은 기자보다 더 가혹하면 가혹했지 덜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보다 도태되지 않으려 영어 유치원엘 가고 한창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흙장난을 하며 놀아야할 초등학생임에도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사교육 투어를 소화해야 한다. 본격적인 입시 준비에 뛰어드는 중고등학생들의 일과는 말할 것도 없다.
입시지옥을 탈출하면 취업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인턴 및 봉사활동, 자격증, 어학성적, 어학연수까지 마친 고스펙 인재들이 한정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입사 뒤엔 내가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야근에 뛰어들어야 한다.
‘헬조선’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신의 소박한 꿈을 이루려면 끊임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그 보상에 비해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현실이 잉태한 단어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정치 성향도 아닌 생존 그 자체의 문제인 셈이다.
누가 봐도 문제는 ‘현실’에 있건만, 돌은 엉뚱하게도 ‘과거’로 향하는 모양새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역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망언에 가까운 얘기가 스스럼없이 나오는걸 보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는 게 지옥인데 이를 하소연하는 이들에게 ‘역사 공부 좀 제대로 해라’라는 훈계라니. ‘3포 세대’란 말이 낯설기만 할 ‘조선시대’에 여러모로 미안해지는 현실이다.
< 출처 : 공무원저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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