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곳엔 소리 없는 아우성
2014년 기준 한 달 평균 1,142건, 하루 평균 57.1건.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서 집계한 층간소음 민원 발생건수다. 작년 한 해에만 집계된 층간소음 민원 건수는 1만6,370건에 이른다.
국내 인구수가 약 5천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3,054명 중 한 명이 층간 소음으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한 50대 남성이 층간소음으로 인해 이웃과 다투다 흉기로 살인을 저질러 ‘소음’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소음’을 둘러싼 갈등은 비단 주거공간에 한정된 분쟁이 아니다. 수많은 이용자들이 한정된 공간에 모여 앉아 온종일 공부에 열중하는 수험 공간 또한 갖가지 소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수험생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이어진다.
공무원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소음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의 책상이나 독서실 출입문에 경고성 메시지를 적어놓은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왔다는 이들의 사연이 매일같이 올라올 정도다.
이들을 괴롭게 하는 소음은 책장 넘기는 소리, 필기도구를 책상에 던지는 소리, 재채기 소리, 코 푸는 소리, 서랍을 닫는 소리 등 학습 환경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익숙한 소리들이다.
얼핏 보기엔 층간 소음의 경우처럼 지속적으로 발생하진 않는데다, 그에 비하면 덜 시끄러운 소리일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학습 공간에서의 소음으로 인한 불만을 털어놓는 피해자들에겐 ‘본인이 집중하지 못해놓고 남 탓만 한다’라는 핀잔이 따라오기 십상이지만, 정작 소음측정기는 이들의 스트레스가 이유 있는 고충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학습공간에서 발생하는 소음, 도대체 왜 괴로운 것일까.
◈ 층간 소음 뺨치는 옆자리 소음
현재 환경부가 제시하고 있는 층간소음의 기준은 직접 충격을 주었을 때 최고소음을 기준으로 주간 57데시벨(dB), 야간 52데시벨(dB)이다.
층간소음의 대표적인 사례인 아이들이 뛰는 소리는 50데시벨, 의자를 끄는 소리는 60데시벨 정도에 해당한다. 데시벨은 사람의 청각에 가까운 형태로 소리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다.
반면, 이용자들의 학습을 위해 매우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도서관이나 독서실의 소음은 보통 30데시벨에서 40데시벨 수준에 머무른다.
하지만 주위 물건에 충격을 가하거나, 본인이 직접 특정한 소리를 발생시켰을 때 주위 사람들이 느끼는 소리의 세기는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40데시벨 정도의 조용한 공간에서 실험을 해본 결과, 책상에 볼펜을 떨어뜨리는 소리는 70데시벨, 기침소리는 76데시벨,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코 푸는 소리는 60데시벨,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소리는 75데시벨에 달했다.
초기의 상태보다 약 20데시벨 정도만 증가한 것이지만, 20데시벨의 차이를 만만하게 봐선 안된다. 20데시벨을 에너지량으로 환산하면 순간적으로 100~300배 정도가 급증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탓이다.
학습 환경에서 발생하는 돌발적인 소음이 웬만한 층간 소음만큼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음이 발생하는 공간이 얼마나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가에 따라 피해자가 느끼는 소음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시내버스가 정차 중일 때 발생하는 소음이 60데시벨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이 별다른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는 것도 소음에 대한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절대정숙’만이 학습공간의 미덕은 아닌 셈이다.
◈ 예민한 그들, 카페로 떠나다
조용한 학습공간이 분출하는 악성소음은 ‘카페족’이라는 새로운 부류를 만들어냈다. 도서관이나 독서실 대신 카페에 앉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업무를 처리하거나 공부를 하는 이들은 이미 카페라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는 사람들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쉽사리 카페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연 ‘백색소음’이다.
백색소음이란 넓은 주파수의 범위에서 균일한 주파수 스펙트럼을 가지고 전달되는 소음으로, 7가지 빛을 합하면 백색광이 되는 것처럼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가 합해져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색소음의 종류는 크게 자연음과 환경음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람들이 잡담을 하거나, 찻잔이 부딪치는 소리 등 카페족들이 선호하는 소음은 환경음에 해당된다.
지난달 22일 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윤 모(25)씨는 “학교 도서관에서도 공부할 수 있지만 중간고사 기간이라 일단 많은 학생들이 몰려 좋은 자리를 잡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너무 조용해서 그런지 소음에 유독 신경이 쓰인다”면서 “남이 내는 소리도 싫지만 특히 나 자신도 몸을 움직이거나 화장실을 다녀올 때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차라리 카페가 마음이 편하다”라고 전했다.
또한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해 카페를 찾는다고 밝힌 이 모(27)씨는 “카페에서 나는 여러 소리가 공부할 때 방해가 되는 잡음을 가려주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과연 이들의 말처럼 카페 소음이 독서실보다 학습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평소 소리에 예민하기로 소문난 기자가 직접 비교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체험방법은 간단하다.
40데시벨의 소음을 유지하고 있는 세미나실과 70~73데시벨 수준의 소음을 유지하고 있는 도심 카페에서 모두 다른 100개의 영단어를 보고 40분 동안 암기한 뒤 2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갖고 시험을 보는 방법이다.
암기 목록은 주로 외신과 의학 분야에서 나오는 용어 중 기자가 뜻을 모르는 단어들로 구성했으며, 시간대는 식사 후 집중력이 약해지는 오후 2시를 택했다.
◈ 소음, 제가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초반 집중력이 강했던 장소는 조용한 세미나실이었다. 영단어를 눈으로 훑은 지 10분 만에 1차적으로 해석에 감이 잡히는 단어와 여전히 뜻이 아리송한 단어를 구분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세미나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잡다한 소음이 집중력을 분산시킨 탓이었다. 줄곧 38데시벨을 유지하고 있던 세미나실의 소음은 근처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어느새 50데시벨을 가리켰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간간이 들려오는 기침 소리에 56데시벨을 찍기도 했다. 학습 도중 소음으로 인해 공부의 흐름이 끊긴 것은 총 6번이었다.
학습 시간이 끝나고 20분 정도의 휴식을 가진 뒤 단어의 순서를 뒤섞어서 본 시험 결과는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여러 번 반복해서 학습했기 때문에 다 맞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시험이었지만, 막상 시험지를 받아드니 뜻이 기억나지 않는 단어가 몇 개 보였다. 채점을 해본 결과 총 6개의 문제를 틀렸다.
반면, 카페에서의 학습은 초반에 비교적 집중하기에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학습에 돌입하고나서 약 5분 동안은 주위의 대화 소리와 매장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에 다소 산만한 느낌이었지만, 10분 정도가 지나면서 주위의 소음에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픈 이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는 와중에도 카페 내의 소음은 70에서 73데시벨 사이를 꾸준히 오갔다.
식후의 졸음이 밀려와 집중력이 약해지는 시간대였지만,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이 분위기를 환기시켜준 덕분에 약 30초간의 짧은 휴식 후 다시 학습에 집중하는 방식의 규칙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40분간의 학습을 마치고 20분 동안 머리를 식힌 뒤 본 시험 결과는 ‘오답 없음’이었다.
물론,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백색소음의 효과를 입증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학습 유형과 환경이 다를 뿐 아니라, 더 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은 아닌 만큼 기자의 개인적인 체험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조용한 공간에 있을 때보다 카페에서 공부를 할 때 소음의 크기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고 덕분에 신경에 크게 거슬리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한국산업심리학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적 상태보다 백색 소음을 들을 때 집중력은 47.7%, 기억력은 9.6% 향상되는 한편, 학습 시간은 13.6%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카페와 도서관이 만났다, 스터디 카페
카페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항상 집중력을 강화시켜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2012년 백색소음에 대해 연구한 미국 시카고대학은 “50~70데시벨의 일정한 소음은 완벽한 정적보다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킨다”고 밝히면서도 “백색소음이라 할지라도 80데시벨이 넘을 경우 집중력을 도리어 저해할 수 있다”라고 논문을 통해 전하고 있다.
결국 카페에 얼마나 사람이 붐비는지, 주변 환경이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에 따라 학습의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책을 들고 카페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학습환경의 선호도가 바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만남의 장소’이기만 했던 카페 또한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각종 모임은 물론 ‘나홀로 공부’를 하는 이용자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스터디 카페’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스터디 카페는 여러 개의 독립된 방이 촘촘이 붙어있는 캠퍼스 내 그룹스터디 장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 때문에 스터디 카페의 주 이용층은 2인 이상의 그룹스터디 참석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의 스터디 카페는 이용자의 목적과 선호하는 학습환경 등을 고려한 맞춤형 공간으로 진화하면서 이용층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게다가 장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엔 은근히 눈치가 보이는 일반 카페와는 달리, 1인 1음료 구매 시 기본 5시간 정도의 이용이 가능해 모르는 사람과 불필요한 눈치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카페족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가격’이다. 카페의 ‘개방성’과 학습에 도움이 되는 ‘쾌적함’을 갖췄지만 호주머니가 어느 정도는 채워져 있는 직장인이 아닌, 수험생이나 취준생에겐 기본적으로 5천원을 뛰어넘는 음료 한 잔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용시간과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그나마 저렴한 독서실이나 도서관이 여전히 붐비는 이유다.
◈ 토론토의 카페에서 책장을 넘기다
백색소음이 꼭 카페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쥐 죽은 듯한 정적을 깨고 일부러 적당한 소음을 흘려줌으로써 이용자의 집중력을 돕는 독서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백색소음기나 공기청정기 설치를 홍보하는 학습시설이 많아진 것 또한 ‘백색소음’을 선호하는 학습자들의 성향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일부 독서실에 설치된 백색소음기의 경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평도 있다. 독서실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한 수험생은 “백색소음기가 있다고 해서 등록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책장 넘기는 소리라든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잘 걸러지지 않아서 별로였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백색소음기가 설치된 자리의 경우 수요자가 많은 만큼, 좋은 자리를 얻으려면 공석이 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소음기가 설치된 독서실을 이용하자니 자리가 없고, 스터디 카페를 가자니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을 위한 것이 바로 ‘백색소음 어플’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백색소음 어플’을 다운받으면 바람소리나 파도소리, 빗소리 등과 같은 자연음은 물론, 환풍기 소리나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와 같은 환경음을 들으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하얀소리’ 어플의 경우 11종류의 빗소리와 계절별 자연음은 물론, ‘방콕의 도시’나 ‘토론토의 카페’ 등과 같은 다채로운 백색소음 114개를 제공하고 있어 이용자의 취향에 맞게 골라들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다만, 백색소음이 반복되는 시간이 비교적 짧다는 점과 스마트폰 배터리가 빨리 방전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 출처 : 공무원저널 >
